Scroll to Top

Tags Results.

Tags Results for Articles : 19 articles


나는 감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안목은 충분히 좋다. 당신이 만든 것은 당신을 실망시킬 뿐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저는 디자인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정상 10년 이상 미국에 살고 있는데 예전에는 일본에 귀국할 때마다 롯폰기의 아오야마 북 센터에 가서 “〇〇 디자인 연감 “나 “〇〇 디자인 집 “같은 종류의 책이나 잡지를 두근두근하면서 사곤 했습니다. 그리곤 그걸 아파트 구석에서 페이지가 닳을 때까지 읽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디자인 연감이나 잡지, 광고제 같은 건 거의 체크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런 거에 관심 없으니까…”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이유는 다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업계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들, 그것과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비교했을 때 그 실망감이 싫어서 왠지 피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실망감은 아마 디자인이나 광고 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직업에도 적용되는 것은 아닐까요. 제가 그리는 이상-현실-은 왠지 평범해 보이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좁혀지지 않는 이상의 모습과 자신의 차이 말입니다.

특히 아직 사회인으로서 경험이 부족할 때는 복싱의 보디 블로 같습니다. 휘청거리면서도 겨우겨우 일어서면서 자문자답을 계속하지요.

“나는 이 일과 맞지 않은 걸까?” 하고 말이죠.

(저에겐) 이 Ira Glass가 말했던 구절이 실망감의 보디 블로에서 저의 버팀목이 되고 있어 잠깐 소개하고자 합니다.

신참인 시절 누군가 내게 가르쳐 주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죠. 크리에이티브 업계에서 일하는 우리는 모두 좋은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각이 있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의 세계로 들어간 거죠.

하지만 거기에는 어쩔 수 없는 갭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처음 일을 시작하면 몇 년간은 그렇게 좋은 건 못 만들 거예요. 나쁘진 않지만 그렇게 훌륭하지도 않죠. 뭔가 되고 싶은 건 있는데 거기까진 갈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의 안목. 당신을 이쪽에서 일하게 한, 또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는 그 좋은 안목은 있는 겁니다.

당신이 감각이 있고 안목이 있기 때문에 당신이 만든 게 그렇게 썩 좋지 못하다고 느낄 수 있는 겁니다. 아시겠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단계를 극복하지 못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에서 포기하고 좌절해 버리죠.

단지 제가 간절히 말하고 싶은 건 제가 아는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부분 몇 년 동안 이 단계를 거친다는 겁니다.

감각이 있어야 자기 작품에서 부족한 부분이 보입니다. 그게 뭔지는 모르지만 “특별한 뭔가”가 “부족하다”라는 걸 느낀다는 겁니다.

이건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혹시 당신이 지금 이걸 겪는 중이라면 그건 지극히 평범한 일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해요.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오직 더 많은 일을 하는 겁니다. 그게 이런 케이스를 뛰어넘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스스로 마감일을 결정하세요. 매주도 좋고 매달도 좋습니다. 그 마감에 맞춰서 일을 하나씩 쳐내세요. (질이 모자라 보인다면) 양으로 쳐내는 게 이상과 현실의 갭을 채우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자신이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이 가까워짐을 느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필요합니다. 엄청나게 필요하죠. 거기에선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우는 것 밖엔 없습니다. 아시겠죠?

저는 올해 35살입니다. 사회에서 아직 애송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예전에 가지고 있던 35살의 이미지는 많은 경험을 통해 침착하게 신속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고 인생의 고민 같은 건 조금도 없는… 그런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 나이가 돼보니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고민하는 일의 종류는 변하지만 예전과 같이 불안이나 고민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경험을 쌓으면 쌓은 만큼 보이지 않은 것이 보이게 되었습니다. 아마 45살이 되거나 60살이 되어도 근본적인 마음은 똑같지 않을까요?

하지만 적어도 옛날과 비교해 조금은 자랐다고 생각되는 부분은 그것은 그런 상황을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산기슭에서 보이던 하늘도 넓고 파랗지만 5부 능선에서 본 하늘도 마찬가지로 파랗고 드넓습니다. 정상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려 합니다.

Advertimes에 실린 나는 감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自分はセンスがないと思っている人へ。)칼럼이다.

어릴적 가졌던 35살의 이미지와 35살이 가지고 있는 현실은 누구나 같은가 보다.

自分はセンスがないと思っている人へ。

センスがあるからこそ、自分のつくっているものがそんなに良くないとわかって落ち込むんだ。 — アイラ・グラス

僕がカンヌを避けたワケ。

僕はデザインを仕事として生きています。訳あって10年以上もアメリカに住んでいるのですが、昔は日本へ帰国するたびに六本木の青山ブックセンターに行っては「〇〇デザイン年鑑」や「〇〇デザイン集」といった類の本や雑誌をワクワクしながら買い込んでいました。そしてそれを持ち帰っては、アパートの隅でページがすり減るまで読み込みました。

ただいつの日からか、デザイン年鑑やデザイン雑誌、広告フェスティバル、そういったものをほとんどチェックしなくなりました。

かっこつけて「そんなの興味がないから」って言いたいですが、理由はもうちょっと他のところにあるかもしれない。業界でも超優秀な仕事、それと自分の仕事とを比べた時のガッカリ感が嫌で、なんとなく避けていたんではないのかと感じるようになりました。

このガッカリ感って、きっとデザインや広告業界に限らず、どんな職業にも当てはまることではないしょうか。自分の描く理想はなんとなく見えているのに、どんなに頑張っても決して埋まらない、理想の姿と自分とのギャップ。

とりわけまだ社会人としての経験が浅い頃には、ボディーブローのように効いてきます。ふらふらになりながらも、なんとか立ち上がろうとするたびに自問自答を繰り返す。

「俺にはこの仕事は向いてないんじゃないか」と。

このアイラ・グラスが語っていた一節が、ガッカリ感のボディーブローでふらふらの僕の心の支えになっているので、ちょっとご紹介させてください。

新米だった頃の僕に、誰かが教えてくれてればと切に願うこと。

クリエイティブの仕事に携わる僕らは皆、良いセンスを持っている。センスがあるからクリエイティブの世界へと入り込んだんだ。

ただそこには「ギャップ」が待っている。

仕事をはじめて数年もすると気がつくんだ。自分のつくっているものがそこまで良くはないんじゃないかと。悪くはないかもしれないが、素晴らしいとは言い難い。こうなりたいという理想はあるんだけど、そこまで達していない。ただ持っているセンス。良いものかどうかが判断できるそのするどい目、それ自体はいまだに健在している。センスがあるからこそ、自分のつくっているものがそんなに良くないとわかって落ち込むんだ。 わかるかい?

ほとんどの人はこのフェーズを乗り越えることができない。多くの人がこの時点で諦めて挫折しまう。ただ僕が切に伝えたいのは、僕が知る素晴らしいクリエイティブな仕事をするほとんどの人は皆、何年もの間このフェーズを経験しているんだ。

センスがあるからこそ、自分の作品が思い描いた理想には程遠いと分かってしまう。何かが足りない。それが何かはわからないけど、「特別な何か」が「足りてない」という事実は見えてしまう。

これは誰しもが通る道なんだ。もし君がまさにその道中で苦しんでいるのだとしたら、それはいたって普通なんだということを知ってほしい。

ここで一番重要なのは、ただひたすら多くの仕事をこなすこと。それこそが、このフェーズを越えるのに最も大事なことなんだ。自分の中で締め切りを設定する。毎週もしくは毎月でもいい。それに合わせて一つづつ仕事*をこなしていく。量をこなしていくことが、理想と現実のギャップを埋めていく唯一の手段なんだ。 そうして仕事をこなしていくことで、だんだんと思い描いていたものと同じクオリティーのものを作れるようになっていく。ただ時間はかかる。ものすごくかかる。ただそこは戦って戦って、戦い抜くしかないんだ。オーケー?

僕は今年で35歳です。社会の中ではまだまだ若造かもしれません。

ただ僕が昔に抱いていた35歳のイメージ、それは経験豊富で落ち着き払って、自分の仕事をバリバリやって、人生の悩みなんてこれっぽちもない。そんな姿を想像していました。

ただ実際にその年齢になってみると、どうしたことか昔と余り変わっていません。種類は変わっても、昔と同じように不安や悩みを抱えながら生きています。経験を積めば積んだで、昔は見えていなかったものが見えてきました。きっと45歳になっても、60歳になっても、そこで感じる根本的な想いはきっと同じ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ただ少なくとも昔と比べて成長した(と思える)ところ。それは、そんな状況が当たり前なんだと受け入れられるようになったことです。

山の麓から見えていた空も広く青かったけど、5合目から見る空も等しく青広い。頂上はまだ見えないけれど、一歩一歩、踏みしめながら登って行こうと思います。

via. Advertimes.

View all posts in Intangible
Tagged : , Scroll to Top

View all posts in Slash.Dash
Tagged : Scroll to Top

View all posts in Slash.Dash
Tagged : , Scroll to Top

웹디자인이 죽었다고? 아니, 그렇지 않다.

아니다, 웹디자인은 죽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솔루션들이 죽었을 뿐이다.영혼 없는 테마들과 허접한 스킨 따위가 죽었을 뿐이다. 우리의 솔루션은 더 좋아지고 더 영리해져야 한다.유행을 따르는 것과 프레임워크, 템플릿을 줄이고 스토리텔링과 개성은 살려야 한다. 유저들은 훌륭한 스토리와 이미지를 갈망하며 훌륭한 비주얼디자인과 레이아웃에 열광한다.그들은 독창적이며 끝내주는 사용자 경험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주목받는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는 우리의 전략인 것이다.

smashingmagazine에 게제된 Vitaly Friedman의 칼럼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프레임워크나 템플릿들을 처음 접했을때의 느낌은 편리함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곧 모든것의 정수(Core)가 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현재 컨텐츠 유통의 대세인 App을 보아도 그렇다.

편리함, 단순함, 즉각성.

확신하건데 이것들이 정수(Core)가 될리가 없다.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것은 방금 퍼블리싱된 컨텐츠가 아니라 지금도 나를 가슴뛰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Web Design Is Dead.” No, It Isn’t.

No, web design isn’t dead. Generic solutions are dead. Soulless theming and quick skinning are dead. Our solutions have to be better and smarter. Fewer templates, frameworks and trends, and more storytelling, personality and character. Users crave good stories and good photography; they’re eager for good visuals and interesting layouts; they can’t wait for distinctive and remarkably delightful user experiences. This exactly should be our strategy to create websites that stand out.

via. smashingmagazine

View all posts in Intangible
Tagged : , , Scroll to Top
View all posts in Slash.Dash
Tagged : , , Scroll to Top

애플은 하는데 왜 당신은 못하지?

Shot on iPhone 6. 이 캠페인은 너무나 심플하고 미니멀하며 그들은 심지어 ‘an’이라는 단어마저 지워버렸다. 애플에서 일하는 그 똑똑한 친구들은 당신네 회사의 평범한 광고인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사실 (요즘) 마케팅 시장은 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부분의 광고에 에이전시들은 너도나도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가장해 서로 온갖 종류의 기술적 사기와 스펙 홍보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좀 아이러니하게도 애플과 같은 테크 회사가 그들에게 광고가 어떤 것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웃기지 않나? 문명이래 가장 성공한 회사가 신문, 포스터, TV 같은데 자신들의 광고를 집중한다는 게 말이다.

어쨌든 올해 당신이 볼 최고의 캠페인이며 그중에서 가장 어려운 그것. “포스터 “를 보자.

이 광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간단하다. 바로 아이폰 6가 멋진 카메라를 가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건 훌룡한 데모 광고이다.

카메라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광고하는데 멋진 사진을 찍고 그것들을 포스터 사이즈로 출력해 보여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고해상도와 프로세서, 렌즈의 퀄리티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실제 예제들. 죽이지 않나?

이 광고들은 믿고 기억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게 멋지기 때문이다. 또한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리고 다른 모든 광고 회사들이 떠들어 대는 헛소리들도 없다.

멍청한 잡소리들도 없고 multiple 로고도 없다.(확신하건대 어떤 녀석이 Instagram, Snapseed, VSCO Cam, Mextures, Afterlight, Filterstorm Neue, Camera+, Flickr, Instaflash Pro, olloclip Photo Lens과 Adobe Photoshop Express 로고를 포스터에 박아 넣으려는 멍청한 딜을 하려고 했을 것이다. 로고를 넣었다면 이걸 보는 사람도 없을 것이고 포스터가 주는 임팩트를 완전히 망가뜨렸을 것이다.)

포스터에는 Pack Shot(광고를 위한 제품 사진)도 없고 부연 설명도 없다. 이미지와 싸우는 의미 없는 타이포그래피도 없다.

그 포스터보다 더 나은 브랜드는 없는 것이다.

언젠가 광고 회사들은 브랜딩에 대해 배울 것이다. 그것은 멍청하게 커다란 로고 사이즈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질과 구조에 관한 것이며 Good design이라는 것을 말이다.

이 캠페인은 사진에 관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트디렉션은 모두 사진이 된다.

이미지는 모두 유명한 사진작가가 아닌 우리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아마추어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나아가 이 굉장한 카메라는 더 많은 것을 보여준다.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당연히 나도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하지만 이 광고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보여준다. 바로 광고 회사들이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런 임펙트 있는 포스터 광고들이 도시환경을 개선하고 광고 소비자들의 더 나은 생활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이 지금 일하는 캠페인은 어떤가?

CR에 기고된 Paul Belford의 칼럼이다.

“언젠가 광고 회사들은 브랜딩이 커다란 로고 사이즈가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의 질과 구조에 관한 것이며 Good design이라는 것을 배울 것이다.(When will advertisers learn that branding is all about the quality of the communication, the hierarchy of the communication and good design. Not the biggest logo size.)”

소름끼치도록 동감한다.

If Apple can, why can’t you?

Shot on iPhone 6. A campaign so simple and minimal they even dispensed with the word ‘an’. Those clever folks at Apple certainly think different(ly) to your average advertiser.

We seem to be living through an unfortunate blip in the world of marketing. Where most ad agencies are cynically scrambling to out-bullshit each other with all manner of tech gimmickry and scam product innovations masquerading as communications strategies.

Somewhat ironically, it takes a tech company to show them how advertising should be done.

Funny isn’t it, how the most successful company in the entire history of civilisation concentrates their advertising budget on press, poster and TV?

Anyway, back to one of the best campaigns you’ll see this year. Maybe even the best. In the hardest medium of them all. Posters. These deceptively simple ads inarguably demonstrate what a fantastic camera the iPhone 6 has.

These are basically great demo ads (remember them?).

And what better way to demonstrate the potential of the camera than to take wonderful photos and blow them up to poster size?

Persuasively illustrating the quality of the lens, the power of the processor and the high resolution. I’m sold.

This is advertising you can actually believe and remember. Because it’s impressive.It’s also beautiful. And devoid of all the ugly crap that advertisers invariably inflict on us.

No dumb embarrassing end-line. No multiple logos(I’m certain that anyone else would have done some sort of stupid deal that would have demanded a row of Instagram, Snapseed, VSCO Cam, Mextures, Afterlight, Filterstorm Neue, Camera+, Flickr, Instaflash Pro, olloclip Photo Lens and Adobe Photoshop Express logos across the base of these posters. Logos that no viewer would ever take in and would completely ruin the impact).

There’s no pack shot. No small print. And no crass typography fighting the image. Yet these posters couldn’t be better branded.

When will advertisers learn that branding is all about the quality of the communication, the hierarchy of the communication and good design. Not the biggest logo size.

The campaign is all about the pictures, so the art direction becomes all about the pictures.

Images not by famous photographers but by people we’ve never heard of. Amateurs. Thereby further demonstrating what a great camera it is – if they can do it, then surely so can I. But these ads also demonstrate one other important thing. That advertisers have a social responsibility. I would strongly argue that truly effective poster advertising like this improves the urban environment and brightens the viewer’s day by its presence.

Will the campaign you’re working on right now do that?

via. Creative Review

View all posts in Intangible
Tagged : , , , Scroll to Top

미 대사 Mark Lippert 공격에 대한 한국인들의 분열

지난주 일어난 Mark W. Lippert 미 대사에 대한 공격은 미 대사의 건강뿐 만 아니라 한미 공조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들로 넘쳐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주로 보수적인 한국인들이 주도하는 반응들에 대해 비판적인 사람들은 박근혜 정부와 그 지지자들이 미국을 “숭배”하려 하고 있으며 사건을 정치화하려 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한국 뉴스 미디어들이 피투성이가 된 Lippert 대사의 이미지를 보여줄 때마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보수적인 행동가들은 미 대사관에 메시지를 걸었으며 Lippert 대사의 블로그와 트위터 계정에는 사과의 메시지를 담은 글들로 가득 찼다.

한국에서의 주류 보수 이데올로기는 한국전쟁을 겪는 동안 구세주로서 희생된 수많은 미국 병사들의 인명에 대해 사람들이 존경을 가질 것을 가르치고 있다.

특히 노년층의 많은 한국인들은 김기종 사건을 몰지각한 범죄일 뿐 아니라 배은망덕한 – 유교사회에서 가장 멸시당하는 종류의 – 범죄로 보고 있다.

월요일 군복을 입은 노년의 시위대는 시민들을 독려하며 “미국인들이 전쟁 때 해줬던 일을 잊지 말자!”, “종북척결!”이라며 미 대사를 공격한 배후에는 북한의 동조자들이 있다고 주장했다.이러한 감정은 이 사건이 미국과의 동맹을 해칠 것을 우려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에 대해 반대하는 반응이 나오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한 블로거는 “이건 너무한 거다! 마치 종교 예배 같다”라고 말하며 다른 블로거는 “’I love America’ 퍼포먼스 같은 건 마치 조선시대 한국인들이 임진왜란 때 그들을 도와준 명나라를 위해 만든 건축물 같다.”라고 말했다.

John Delury 연세대 교수는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온 손님에 대한 잔인한 범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며 충격과 깊은 연민을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와 정치권이 단독 범죄인 이 사건을 지나치게 북한 추종자 색출과 한미 동맹 강화에 연결 짓고 있다” 고 밝혔다.

토요일 미 대사관 앞 큰길에서 열린 교회단체의 부채춤 퍼포먼스를 지켜본 36세의 김미현 씨는 “난 미국 대사를 해친 그 미친놈이 정말 싫습니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 미국인들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런 건 정말 역겨워요. 이 사람들은 지나친 거예요. 그리고 이런 게 오히려 미국인들의 이미지와 한미 동맹에 악영향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Mark Lippert 미 대사에 대한 공격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한국이 양분되고 있다는 뉴욕 타임스의 기사이다.

..

내가 꼬맹이일때 그랬다.

변변히 밥벌이도 못하고 아르바이트나 해서 부모님께 몇 푼 안되는 돈을 봉투에 넣어 드리면 아버지는 항상 “이런 돈 필요 없다.” 라고 하셨다.

그래도 자식놈이 돈 몇푼이라도 드리면 그래도 내 자식노릇은 한거다라고 생각하며 흐뭇해 했는데… 나이들어 겪어보니 그건 정말 “필요없는 돈”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이 정말 바라는건 내 자식이 푼돈 몇푼 넣어주며 흐뭇해하는 모습보다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기 일을 찾아 진득하게 뭔가를 해내는게 훨씬 더 보고 싶으셨을꺼다.

한국이 식민지 조선이 아닌이상 미 대사를 암살한다고 “자주독립”이 되는 것도 아니고 미국 국부의 묘를 세워 은혜를 갚아야 하는 시대도 아니다.

힘없고 무지해서 동네 큰 형 바지춤을 잡아야 했던 조선도 아니고 전쟁통에 코찔찔이로 밥벌이를 찾아 다녀야 했던 한국도 아니다. 그만큼 크고 장성했으면 어른다운 모습을 보여야 할 나이의 한국이다.

잘못된 것은 크게 반성하고 상대에게 깨끗하고 엄중하게 사과해야 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나이의 한국이다.

장성한 나이의 자식이 가져야 할 품격과 도리에 대해 저 어버이 연합이라는 단체에게 진정 묻고 싶다.

South Koreans Divided on Reactions to Knife Attack on U.S. Ambassador Mark Lippert

The knife attack last week on the American ambassador to South Korea, Mark W. Lippert, set off an outpouring of good wishes here for both the envoy and Seoul’s alliance with Washington.

But the response, led largely by conservative South Koreans, has provoked a backlash, with accusations that the government of President Park Geun-hye and its supporters are “worshiping” America and politicizing the case to discredit their critics.

When the South Korean news media carried images of Mr. Lippert splattered with blood, the public initially reacted with shock. Well-wishers flooded Mr. Lippert’s blog and Twitter account, and they posted messages on signs that conservative activists put up near the United States Embassy in Seoul. The tone of the messages quickly turned into one of guilt and apology.

In South Korea, mainstream conservative ideology teaches people to regard the United States as a savior that sacrificed the lives of tens of thousands of its soldiers while fighting for the South during the Korean War.

Many Koreans, especially those who are older, saw Mr. Kim not only as a senseless criminal, but also as an ingrate — the most despised character in Korea’s deeply Confucian culture.

On Monday, a crowd of older South Koreans in military uniforms rallied near the American Embassy, urging fellow citizens “not to forget what the Americans did for us during the war” and to “eradicate jongbuk,” or sympathizers with North Korea, who they said were behind the attack on the ambassador.

Such sentiments reflected fears that the episode might harm the alliance with Washington.

Yet it did not take long for a counterreaction to kick in.

“This is too much! What they did was almost like god worshiping,” one blogger said. Another compared the wave of “I love America” feelings to shrines that ancient Koreans built to worship China for sending troops to help fight Japanese invaders.

John Delury, an American professor at Yonsei University in Seoul, said, “South Koreans felt shock and deep sympathy on a personal level for the U.S. ambassador, even a sense of guilt that he suffered this brutal attack as a guest in their country.”

“But now government officials and political parties are hyper-politicizing what was really an isolated incident,” he said, “linking it to a campaign against ‘pro-North Korea followers’ and as a way to drum up support for the U.S.-South Korean alliance.”

“I hate the crazy man who stabbed the ambassador, and as a Korean, I feel like apologizing deeply to the Americans,” said Kim Mi-hyun, 36, who watched a group of Christian church members perform a traditional fan dance and kneel in contrition across a boulevard from the American Embassy on Saturday.

“But this scene makes me sick at the stomach. They are way overdoing it, and it actually will damage the image of the Americans and the alliance among Koreans.”

via. The NewYork Times

View all posts in Intangible
Tagged : , , , Scroll to Top
나 같은 직업을 가지는 방법

비결은 무엇일까요? 제가 하는 것들을 어떻게 하면 간결한 문장으로 압축하며 최대한 듣기 좋게 포장할 수 있을까요? 다음과 같은 식입니다.

  • 호기심을 가지세요. 폭넓게 읽으세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세요. 제 생각에는, 많은 이가 지능이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그냥 호기심으로 압축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모든 것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세요. 저는 거의 병적일 정도로 거절을 못 합니다. 프로젝트든 인터뷰든 친구들과의 무엇이든 말이죠. 그 결과 저는 많은 것을 시도하게 되고, 그 대부분이 실패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결국 무언가는 해낸 셈이 되죠.
  • 다른 이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고 생각하세요. 많은 사람은 자신이 그 분야를 충분히 잘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거나 다른 이들이 이미 할 수 있는 것은 다 시도해봤으리라 믿고, 그냥 시도를 포기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무언가를 제대로 해낼 방법을 정말 아는 사람은 드물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이들은 더욱 드뭅니다. 그러니까 만약 여러분이 무언가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면, 꽤 잘해낼 것입니다.
  • Aaron Swartz의 블로그에 올려진 포스트:나 같은 직업을 가지는 방법이다.(전문번역)

    후배나 다른 학생들을 만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지만 결국 “꼰대같은 얘기만 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을 자주한다.
    하지만 그 꼰대같은 말이 참 힘들게 깨달은 결과라는 걸 꼭 알아줬으면 할 때가 있다.

    가장 바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걸 말이다.

    How to Get a Job Like Mine

    What’s the secret? How can I boil down things I do into pithy sentences that make myself sound as good as possible? Here goes:

    1. Be curious. Read widely. Try new things. I think a lot of what people call intelligence just boils down to curiosity.
    2. Say yes to everything. I have a lot of trouble saying no, to an pathological degree — whether to projects or to interviews or to friends. As a result, I attempt a lot and even if most of it fails, I’ve still done something.
    3. Assume nobody else has any idea what they’re doing either. A lot of people refuse to try something because they feel they don’t know enough about it or they assume other people must have already tried everything they could have thought of. Well, few people really have any idea how to do things right and even fewer are to try new things, so usually if you give your best shot at something you’ll do pretty well.

    via. aaronsw.jottit.com

    View all posts in Intangible
    Tagged : , Scroll to Top

    Error. 404. _ Image not found.

    Sorry, This images does not exist. Either it was deleted or it never existed in the first place.
    You can check the correct information directly about this images on advertimes.com.

    도내의 모역 앞의 상가 창 표시. 작성할 때는 종이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현장에 대한)상상력이 없으면 이렇게 1행부터 1,2,3라고 적어버립니다. 하지만 실제로 건물의 벽면에 수직으로 붙여 보면 사진2의 방식이 확실히 잘 이해됩니다.

    都内の某駅前にある、雑居ビルの窓の表示[写真①]。作成する時は紙の上での作業ですから、想像力を働かせないと、このようについ、1行目から順に1、2、3…と書いてしまいます。でも、実際にビルの壁面に垂直に貼り付けてみると、[写真②]の並べ方の方が、明らかにしっくり来ますよね。

    Error. 404. _ Image not found.

    Sorry, This images does not exist. Either it was deleted or it never existed in the first place.
    You can check the correct information directly about this images on advertimes.com.

    거리에서 흔히 보는 지도 간판. 이게 정말 알기 어려운 것은 지도를 보는 사람 신체의 방향과 지도의 상하 좌우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도와 마주 보았을 때, 몸의 정면 방향이 지도상에서는 위쪽에, 등뒤의 방향이 아래쪽에 그려져 있으면, 좌우의 감각도 실제와 일치하고 우리는 위치 관계를 찾을수 있습니다. 그게 제대로 되있지 않다면(더군다나 거기에 현재 위치표시도 없다면)잠깐동안 망연자실하게됩니다.

    도쿄의 키치죠지 역 앞 상점가를 사진의 경우 지도를 보려고 노력하는 동안 내 몸은 그림의 왼쪽 끝에서 왼쪽 방향을 향하게 되었습니다. 지도의 위치가 바뀌어 있지 않아도 단지 이 그림을 시계 방향으로 90°로 돌리고 현재위치를 그려주면 같은 제작비로 계속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 입니다.

    메시지는 “여기에 있는 나”가 아니라 “현장에 있는 상대”에게 보내는 것. 그 기본을 잊지 않는 한, “惜しい!(아쉽다!)”라는 느낌은 분명히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게이오대학 시모무라 켄이치(下村健一) 교수의 칼럼이다. 요즘 가장 흥미있고 재미있게 보는 칼럼중에 하나인데… (이분 칼럼이 전체적으로 다 괜찮다.)

    디자인을 메세지로 이해하는 것.

    디자인을 커뮤니케이션으로 이해하는 것은 디자이너가 “다락방 아이”보다 “광장의 거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디자이너와 컨텐츠 제작자에 대한 이해이자 목표이다.

    各地の街角でよく見かける、おなじみのクリーム色がかった地図看板[写真③]。あれが本当にわかりづらいのは、地図を見ている人の身体の向きと、地図の上下左右が一致していないことが多いからです。

    地図と向き合った時、身体の正面の方向が地図上では上側に、背後の方向が下側に描かれていれば、左右の感覚も実感と一致して、私達は位置関係がつかめます。それが狂っていたら(まして、そこに現在地の表示も無かったら)しばし途方に暮れます。

    東京・吉祥寺の駅前商店街を描いた[写真③]の場合、(道路標識の白いポールが思いきり邪魔なのはご愛嬌として)なんと地図を見て考え込んでいる私の身体は、図の左下端で、左方向を向いて立っていたのでした! 掲示場所が変えられなくても、ただこの図を時計回りに90°倒して描き、現在地を記入していれば[写真④]、同じ製作費でずっと皆の役に立つ物になったのですが。

    メッセージは、《ここにいる自分》ではなく、《現場にいる相手》に届けるもの。その基本を忘れなければ、「惜しい!」はきっと減らせます。

  • “惜しい!実感とズレた表示——現場の身体感覚を大切に” _ via. advertimes.
  • View all posts in Intangible
    Tagged : , Scroll to Top
    지금, 왜 역사인식을 논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20 세기 전반 일본인은 인근 지역을 침략하고 지배했다. 청일전쟁 이전과 2차 세계대전 이후와 달리 당시 일본은 광대한 식민지를 가진 제국이었으며, 주변 지역에 대한 무력행사를 주저하지 않는 국가였다.

    지난 20년간 한국과 중국은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반성하라고 일본인에게 촉구하고 있다. ‘역사인식’, ‘역사문제’라는 말은 과거의 해석이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니라 ‘일본에 과거 책임을 묻는다’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현재 살아 있는 대부분의 일본인은 이웃 나라를 직접 해친 기억이 없다. 1945년에 태어난 사람은 2014년 현재 69세가 돼가고 있다. ‘전후’에 태어난 사람들은 전쟁과 식민지배에 가담할 기회가 아예 없었다. 지금의 젊은 세대, 예를 들어 20세의 젊은이는 조부모 세대가 먼 과거에 지은 죄를 추궁당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웃 나라 사람들도 세대가 달라졌다. 지금 일본을 규탄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직접 일본에게 피해를 당한 경험을 갖고 있지 않다.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와 규탄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세대적 괴리라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재 일본의 젊은이는 자신이 직접 가해자가 된 적도 없는데 왜 직접 피해를 당하지 않은 이웃 나라의 또래로부터 비난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 것이다. 여기에 일본의 젊은이들이 왜 ‘역사 인식’ 문제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고 이웃 나라 국민을 무시하거나 헤이트스피치에 공감하는지에 대한 근원적 해답이 있다. (한편 논리적으로 일본의 현재 세대는 이웃 나라에 충분한 배상과 사과를 하지 않은 앞선 세대를 비판하고 추궁할 권리가 있다.)

    (따라서)역사적 과오는 국가가 책임져야 된다. 만약 국가 차원의 잘못이 방치되면 그 나라의 국민들은 세대가 지날수록 부당한 빚을 짊어지게 된다. 사람은 살면서 크고 작은 다양한 과오를 저지른다. 이를 갚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죄를 쌓게 된다. 사람의 정상적 사회 생활이 가능한 것은 과오를 저지르면 대가를 치르고 해소하는 방법이 사회에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 기본은 죄를 인정하고 사과하고 배상하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다.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은 개인으로서 조상의 죄를 짊어질 필요는 없다. 그러나 국민으로서 책임 상속은 피할 수 없다. 이를 맡아 화해의 기초를 만드는 일은 국가 지도자 외에는 할 수 없다. 정치인들은 국가와 국민에 대한 책임을 엄숙히 자각해야 한다.

    동경대 교수이자 역사학자인 미타니 히로시의 (三谷博)의 칼럼이다.

    단순히 일본과 한국의 역사인식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역사가 아닌 국민으로서의 역사적 책임, 그리고 그 잘못된 책임의 상속은 이후 세대에게 큰 폐를 끼치게 된다는 의견은 곱씹을만 하다.

    いま、なぜ「歴史認識」を論ずる必要があるのか

    20世紀の前半、日本人は近隣地域を侵略し、支配した。日清戦争以前や第2次世界大戦後と異なって、当時の日本は広大な植民地を持つ帝国であり、隣接地域に対して武力行使を躊躇わない国だったのである。

    この20年来、韓国・中国はこの事実を認識し、反省せよと日本人に迫ってきている。東アジアの「歴史問題」「歴史認識」という言葉は、過去の解釈という一般的意味でなく、「日本に過去の責任を問う」という特殊な意味を担っているのである。

    現在生きている日本人のほとんどは隣国に対して自ら危害を加えた記憶がない。1945年に生まれた人は2014年現在で69歳になっている。「戦後」に生まれた人々は戦争や支配に加担する機会がそもそもなかった。今の若い世代、例えば現在20歳の人々は、祖父母の世代が遠い過去に犯した罪を問われているのである。同様に、隣国の人々も世代を経ている。いま日本を糾弾している人々の多くは、自らは日本によって痛めつけられた経験を持っていない。

    ここには、責任ある当事者と糾弾される人々との世代的乖離という問題がある。今の日本の若者は、自ら加害したことがなく、責任がないはずの自分が、なぜ、直接の被害者でない隣国の同世代から非難されるのか、合点が行かない。ここに、日本の若者たちが、「歴史認識」問題の存在認知を拒否し、隣国民を無視したり、ヘイト・スピーチに共感をよせたりする根源がある。(他方、純論理的には、日本の現行世代は、隣国に対して十分な謝罪と賠償をしてこなかった先行世代に対し、批判と追究をする権利があることになる)

    したがって、歴史的過誤の問題は、国家自体が責任をとらねばならない。もしこうした国家レヴェルの過ちが放置されるならば、その国民は後の世代になればなるほど不当な負い目を背負うことになる。一般に、人は生きるなかで必ず大小様々の失敗をする。もし、それを償う方法が講じられないなら、罪は降り積もってゆく。人が正常な社会生活ができるのは、失敗や罪を償い、解消する方法が社会に備わっているからである。その基本は、罪を認め、謝罪し、賠償することである。国家レヴェルでもまったく同様に違いない。

    戦後に生まれた日本人は個人として先祖の罪を背負う必要はない。しかし、国民である限り、責任の継承は不可避であり、それを担い、和解への基礎を創るのは国家の指導者以外にはない。政治家は国家・国民への責任を厳粛に自覚する必要がある。

    via. Huffingtonpost Japan

    View all posts in Intangible
    Tagged : , , , Scroll to Top